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접대의 관습 (문단 편집) == 손님을 정말 접대하고 싶지 않다면? == 애초에 '''[[문전박대|받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돌려보내면 된다]]'''. 거주지는 주인의 소유물이기에 손님을 거부하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가장 대표적인 게 '상대편과 적대관계'거나 '집안에 우환이 있다' 등이 있다. 후자의 경우 집안에 큰 걱정거리나 흉사가 있을 경우 손님을 잘 대접할 만한 여유도 없고, 되려 손님에게까지 피해가 끼칠 수도 있으니 손님을 거절하는 것이 정당하게 여겨진 것. 한국의 전래 민담을 보면 의외로 손님을 거절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한데, 이는 어디까지나 정당한 사정(특히 잘못하면 손님에게 되려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사정)이 있을 때 손님에게 '''정중히 사과''' 하면서 모시기를 거절했더니 그 손님이 사실은 [[지나가던 ○○○|지나가던]] [[지나가던 선비|선비]], 또는 [[지나가던 스님|스님]]이어서 집안의 우환을 해결해주고 기어코 잠자리와 끼니를 받아내고야 만다는 구조의 이야기이다. 즉 '손님은 [[그것은 좋은 것이다|좋은 것이다]], 그러니 손님을 잘 모셔라' 라는 교훈을 한 바퀴 꼬아서 전달하는 이야기인 것. 그렇지 않고 정말 손님을 박대하는 캐릭터는 [[옹고집전]]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 쨜 없이 [[천하의 개쌍놈]]취급을 받는다.] 전근대 사회에서도 주인이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물론 자주 거절한다면 야박하고 인색하다는 평판을 받게 될 것이고, 특히 합당한 이유 없이 손님을 거절하는 것은 주인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는 행위로 여겨지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일단 손님으로 받아준 뒤에 그를 해치는 것이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최악의 범죄행위'''로 여겨진 것에 비하면 비교적 사소한 흉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접대의 관습 위반 사례인 [[타타르]]족의 [[예수게이]] 독살을 살펴보자. 일단 예수게이는 타타르족과 이미 10여년간이나 싸워온 명백한 적이었다. 이런 인물이 손님으로 찾아온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는 '''<평소에는 적이지만 지금은 손님이라 인정하고 대접한 뒤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것>'''으로, 이는 타타르족을 관대하고 명예로운 씨족으로 널리 알려 그 평판과 명예를 크게 높일만한 행동이 된다.. 하지만 숙적을 두고 그렇게까지 사람 좋게 굴 수는 없다면, 예수게이를 '''<손님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 자리에서 쫓아내는 방법>'''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손님을 [[문전박대]]하는 이들은 구두쇠라며 경멸받았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손님을 거절하는 것은 주인의 권리이다. 또한 찾아온 이가 오랜 시간 동안 싸워온 적이라면 손님으로 받아들이길 거부할 명분은 충분히 넘친다. 이 경우 '쫓겨날 것이 뻔한 자리에 뭣하러 찾아가서 비웃음을 자초하느냐'고 오히려 예수게이가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고, 그렇진 않더라도 최소한 타타르족을 야박하다고 비난할만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만약 타타르족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게이를 처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더라면 그를 '''<손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전사들이 모여 싸움을 거는 방법>'''이 있었다. 이 역시 당시 초원의 부족사회에서 별다른 은원이나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을 다짜고짜 해치는 이들은 크게 경멸받았지만, 이미 적대관계인 이상 적대 부족의 영역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예수게이 자신의 책임이며, 타타르족으로서는 무슨 이유로든 자기네 앞마당에 스스로 들어온 적을 가만히 놔둘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예수게이 역시 타타르족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는지 가짜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겼는데, 이는 '주인을 속이는 행위'이기에 접대의 관습에서 손님의 책임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즉 타타르족으로서는 "그는 본래 우리의 적이니 손님으로 맞아들일 이유가 없다. 게다가 자기 이름과 정체를 숨기고 우리 부족에 들어오려고 했으니, 염탐하러 온 것이 아니냐?"라며 자신들이 정당하게 예수게이를 죽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예수게이의 씨족, 예를 들어 자식인 [[칭기즈 칸|테무진]]에게는 예수게이의 죽음에 대해 복수할 권리가 생기고, 또한 평판에 있어서도 명예를 실추시킬만한 행태라 할 수는 없지만 '타타르족은 그 행태가 가차없고 자비심이 없다'라는 부정적 인식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이전부터 전쟁을 거듭하며 계속 원한을 쌓아가던 관계에서 또 한번의 원한이 더 쌓인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고, 평판 문제 역시 공적, 객관적 기준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여 불명예스러운 이들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이 아니라면 단순히 좋고 나쁜 평판이란 단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즉 제3자인 다른 부족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적이라지만 손님으로 받아달라고 요청하는데 그 자리에서 쳐죽이는 것은 지나친 일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적에게는 가차없이 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라고 여겨 평가가 갈릴 수 있는 문제인 것. 물론 이런 평가가 나쁜 쪽으로 크게 쏠리게 되면 그것 역시 타타르족의 평판을 떨어트리고 입장을 나쁘게 만들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일단 받아들인 손님을 해친다는 최악의 행위를 저지르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즉 만약 예수게이가 이렇게 살해당했다면, 제3자인 다른 부족의 입장에서 보기에 그것은 단지 타타르 부족과 키야트 씨족 '''사이의''' 문제일 뿐 공적 윤리로 잘잘못을 가릴 문제가 아니게 되어 굳이 한 쪽 편을 단죄하고 비난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양 부족 사이의 문제에서 갈등이 격화될 경우 평판이 더 좋은 부족이 동맹세력을 확보하기 쉽다는 등의 장점은 있다. 하지만 이는 또 달리 보면 적에게는 가차없이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는 쪽이 동맹으로는 더 든든하다고 여기고, 타타르족의 편에 서는 쪽을 선호할수도 있으니 이것이 '평판은 상대적 문제'라는 의미인 것. 하지만 타타르족이 저지른 행동의 문제는 바로 그를 모르는 척하고 '''<손님으로 받아들인 후 대접한 음식으로 독살>'''했다는 것이었다. 예수게이 역시 자신의 정체를 속이는 잘못을 먼저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손님으로 받아들인 후에 해쳤다는 타타르족의 잘못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크기에 예수게이의 잘못은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예수게이의 아들 테무진의 복수는 단순히 '혈족의 죽음에 대한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공적 윤리를 저버린 자들에 대한 응징'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고, 이 때문에 타타르족이 키가 수레바퀴보다 큰 성인은 처형당하고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갈 정도로 처참한 보복을 당했음에도 칭기즈 칸의 적들마저 그들을 동정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